이해와 창조에 대해

공부란 무엇일까? 정확한 정의를 내릴 자신도 없고, 솔직히 꼭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확실한 건, 공부를 통해 우리는 몰랐던 것을 깨닫고, 단순히 머릿속에 머물던 ‘지식’을 넘어서 ‘지혜’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지혜란 지식을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자, 새로운 통찰을 얻는 과정에서 비로소 발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돌이켜보면,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내가 했던 공부는 진정한 공부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것은 단지 시험을 위해 지식을 억지로 머릿속에 채워 넣는 행위에 불과했다. 그때는 나름대로 이해했다고 자부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저 기계적으로 암기한 것일 뿐,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임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을 때가 많다.

특히 수학이나 알고리즘과 같은 추상적 개념을 배울 때는 더욱 그랬다. 복잡한 수식이 가득하거나 난해하게 정리된 알고리즘을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으로 직접 구현해 보는 순간, “아, 이래서 이렇게 되는구나!” 하고 머리를 탁 치는 경험을 하곤 했다. 이 신비로운 현상은 지금도 나를 놀라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과거에 그저 책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흘려보낸 날들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와 노력을 통해 만들어낸 논문들. 그중에서도 “쉽게 썼다”고 평가되는 논문조차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논문을 읽으며 글로 표현된 메커니즘을 따라가려 애써 보지만, 결국 직접 구현해보지 않으면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말과 글만으로는 저자가 의도한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야만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는 완벽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창조가 중요해 보인다. 이미 발견된 수많은 증거와 도구들을 바탕으로, 개인이나 집단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지식과 통찰을 창조해야 한다. 이 창조는 기존의 것들과 비슷해 보일 수는 있겠지만, 결코 똑같을 수 없다. 이 사실은 또한 창조가 반드시 특정 전문가들만의 영역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창조는 어쩌면 모두에게 열려 있는, 우리 각자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의 연장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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