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저자(글): 대런 애쓰모글루 , 제임스 A. 로빈슨 / 번역: 최완규
- 출판사: 시공사 / 출판일: 2012.9.27.
(75쪽) 모든 사회는 국가와 시민이 함께 만들고 집행하는 정치·경제적 규율에 따라 제 기능을 수행한다. 경제제도는 교육을 받고, 저축과 투자를 하며, 혁신을 하고 신기술을 채택하는 등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국민이 어떤 경제제도하에서 살게 될지는 정치 과정을 통해 결정되며, 이 과정의 기제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정치제도다.
(75쪽) 가령 한 나라의 정치제도는 시민이 정치인을 통제하고 그들의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결정한다. 불완전하나마 정치인이 시민의 대리인 역할을 착실히 수행할지는 바로 그런 능력으로 결정된다. 시민에게 그럴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정치인은 주어진 또는 찬탈한 권력을 남용하거나 자신의 부를 축적하며 시민의 이익을 저버리고 자기 잇속만 챙길 수도 있다. 정치제도에는 국가가 사회를 규제하고 다스릴 권한과 역량도 포함된다. 사회 전반에 정치권력이 분배되는 방식을 결정하는 요소들 역시 폭넓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다양한 그룹이 결탁해 집단 이익을 추구하거나 다른 집단의 이익 추구를 가로막을 힘을 키우는지 주시해야 한다.
(75쪽) 제도는 일상생활과 인센티브에 영향을 미치므로 국가의 영고성쇠 역시 결정한다. 사회의 어느 한구석 개인의 재능이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으나 그런 재능이 긍정적인 힘으로 발전하려면 그럴 만한 제도적 틀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76쪽) 미국 시장은 유능한 인재를 공급해주었고 비교적 경쟁적인 시장 환경은 사세를 확장하고 제품을 널리 판매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기업가들은 애초부터 자신이 꿈꾸는 사업이 실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제도와 그 제도가 만들어놓은 법질서를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재산권이 침해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하지 않았다.
(76쪽) 마지막으로 안정과 계속성을 보장해준 것은 정치제도였다. 정치제도는 한편으로 독재자가 집권해 시장 환경을 지배하는 규칙 자체를 바꿔버리고 이들의 재산을 몰수한 다음 감옥에 보내버리거나 목숨과 생계를 위협할 위험을 제거해주었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 특정 이익집단이 정부를 경제적 재앙으로 몰고 가지 못하도록 막아주었다. 이런 기능이 가능한 것은 정치권력 자체가 제한적이고 워낙 광범위하게 분배되어 있어 번영의 밑거름인 인센티브를 창출하는 경제제도가 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9쪽)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빈곤을 조장하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실수와 무지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라는 뜻이다.
(125쪽) 권력이 편중되어 있고 견제를 받지 않으면 절대주의 정체제도라 할 수 있다.
(126쪽) 막스베버가 내린 유명한 정부의 정의는 널리 통설로 받아들여진다. 베버는 사회에서 "합법적인 폭력 사용을 독점"하는 것이 곧 정부라고 규정한 바 있다. 합법적 폭력의 독점과 그에 따른 일정 수준의 중앙집권화가 없다면 정부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제 활동을 규제하는 것은 물론 법질서를 강제할 수도 없다. 정부가 중앙집권화에 실패하면 그 사회는 소말리아처럼 곧 혼란에 빠지고 만다.
(127쪽) 경제와 정치 제도 간에는 강력한 시너지 효과가 생겨날 수 있다. 착취적 정치제도는 소수 엘리트층이 손에 권력을 쥐어주며 권력 행사를 특별히 제한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으레 나머지 사회 구성원의 자원을 착취할 수 있도록 경제제도의 틀을 짠다. 따라서 착취적 경제제도는 자연스레 착취적 정치제도를 수반한다. 사실 이들은 태생적으로 생존을 위해서라도 착취적 정치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권력을 두루 분배하는 포용적 정치제도는 다수의 자원을 몰수하고, 진입 장벽을 세우며, 소수가 혜택을 누리도록 시장의 기능을 억업하는 경제제도를 뿌리 뽑으려 하기 때문이다.
(127쪽) 착취적 경제제도와 정치제도 간의 시너지 관계는 강력한 순환 고리를 만들어낸다. 착취적 정치제도 덕분에 정치권력을 쥔 엘리트층은 제약이나 반대 세력이 거의 없는 경제제도를 선택할 수 있다. 또 향후 정치제도와 그 발전 방향도 멋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착취적 경제제도 역시 동일한 엘리트층의 배를 불려주고, 그렇게 축적한 부와 권력으로 정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128쪽) 반면 포용적 경제제도는 포용적 정치제도가 닦아놓은 토대 위에 형성된다. 포용적 정치제도는 사회 전반에 고루 권력을 분배하고 자의적 권력 행사를 제한하는 구조다. 그런 정치제도하에서는 다른 세력이 권력을 찬탈해 포용적 제도의 기반을 훼손시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정치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착취적 경제제도를 수립하기도 어렵다. 이어 포용적 경제제도는 더욱 공정하게 자원을 분배해 포용적 정치제도가 지속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준다.
(129쪽) 마찬가지로 포용적 경제제도와 착취적 정치제도 역시 공존하기 어렵다. 포용적 경제제도가 권력을 가진 소수 엘리트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착취적 경제제도로 변질되든가, 반대로 역동적 경제 덕분에 착취적 정치제도의 기반이 흔들려 포용적 색채를 띠는 길이 연린다는 것이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엘리트층이 착취적 정치제도를 남용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착취적 정치제도가 포용적 경제제도와 경쟁해야 할 뿐 아니라 나머지 사회 구성원의 계약과 재산권에 따라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131쪽) 경제성장과 기술 변화에는 위대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지적한 이른바 '창조적 파괴'가 수반된다. 옛것을 새것으로 갈아 치운다는 것이다. 새로운 분야가 낡은 분야에서 자원을 빼앗아오고, 신생기업이 기성기업의 시장을 잠식하며, 신기술이 기존 업무 능력과 기계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것 등이 바로 창조적 파괴의 예다. 경제성장 과정과 그 기반이 되는 포용적 제도는 정치 현장은 물론 경제시장에서도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낸다. 포용적 경제제도 및 정치제도를 반대하는 이면에는 창조적 파괴에 대한 공포가 숨어 있다.
(133쪽) 특정 집단의 성패와 관련 없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권력집단이 종종 경제 발전과 번영의 원동력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단순히 효율적인 기계를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을 더 잘 교육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창조적 파괴 효과가 고루 미치는 과도기적이고 불안정한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경제적 특혜가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경제적 패자와 정치권력이 침해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정치적 패자가 가로 막는다면 경제성장은 지속되기 어렵다.
(133쪽) 희소한 자원, 소득과 권력을 둘러싼 갈등은 게임의 규칙인 경제제도를 둘러싼 갈등이나 다름없다. 경제활동은 물론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결정하는 것도 경제제도이기 때문이다. 갈등이 존재할 때 모든 이해 관계자의 바람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는 없다.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하는 이가 있으면, 또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확보해 기뻐하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누가 이런 갈등의 승자가 되느냐가 한나라의 경제 운명을 근본적으로 좌우한다. 성장을 가로막으려는 집단이 승자가 된다면, 실제로도 경제성장을 봉쇄할 것이고 경제는 제자리를 맴돌기 십상이다.
(193쪽) 1937년 스탈린 자신이 이런 말을 남겼다. "기획 작업은 계획을 수립함과 동시에 끝난다고 생각하는 건 오로지 관료들뿐이다. 계획의 수립은 시작에 불과하다. 계획의 진정한 방향성은 계획을 만든 다음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194쪽) 소비에트 경제에서 인민이 열심히 이랗ㄹ 인센티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스탈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당연한 대응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개선되는 부분이 있으면 이를 보상하려 간간이 인센트비를 주기도 했다.
(196쪽) 출발부터 소련공산당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썼다. 경제의 생산성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잇따라 법을 만들어, 꾀를 부린다 싶은 노동자는 모조리 범죄자로 몰았다. 가령 1940년 6월에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허락받지 않고 20분 이상 자리를 비우거나 농땡이를 부리는 것으로 정의된 무단결근을, 6개월 강제노동 또는 25퍼센트 감봉으로 응징 가능한 범죄로 규정했다.
온갖 유사한 처벌 규정이 도입되고 놀라울 정도로 자주 적용되었다. 1940년에서 1955년 사이 성인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600만 명의 인민이 그런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중 1,500만 명이 철창신세를 졌고 25만 명은 총살을 당했다. 매년 노동규정 위반으로 감옥신세를 지는 성인은 100만 명에 육박했다. 이외에도 스탈린은 205만 명을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 처넣었다. 그래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누군가를 공장에 데려다놓는다고는 해도 총을 들이대고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략) 하지만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유도하려면 개인이 재능과 아이디어를 활용해야 하는데 소비에트식 경제제도로는 절대 달성할 수 없는 목표였다. 소련의 지배층은 착취적 경제제도를 포기해야 했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위험에 빠뜨릴 수밖에 없었다.
(251쪽) 로마 지도층은 바쁘게 살고 고분고분한 평민을 원했다. 따라서 기둥을 옮기는 것과 같은 일거리가 필요했다. 무상으로 제공하던 빵과 서커스 등 오락거리와 함께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보완책이었던 것이다. 공화정 당시 지배층보4다 로마 황제가 변화를 막기 위해 휘두른 권력이 한층 강력했다는 뜻이다.
기술혁신이 결여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노예제도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로마인이 장악한 영토가 확대되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노예로 전락했고, 걸핏하면 이탈리아로 데려와 대형 사유지에서 일을 시켰다. 로마 시민이 일해야 할 필요성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정부가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물자로 먹고살면 그만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혁신이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이미 혁신이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새로운 인물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 인물이 기존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야 가능한 일이다. 로마에서 생산을 담당한 계층은 노예였고, 훗날에는 준노예 신분의 소작농이 가세했다. 혁신을 이루어봐야 자신이 아닌 주인 배만 불릴 테니 혁신을 꾀할 인센티브가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314쪽) 책은 사고를 전파시키고 그만큼 백성을 통제하기 어렵게 한다. 어떤 사고는 경제 성장을 증진할 수 있는 소중한 새로운 방법에 관한 것일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사고는 체제를 부정하며 기존의 정치 및 사회 질서를 뒤흔들어 놓는 것일 수도 있다. 책은 또한 구두로 전해지는 지식에 댛나 통제력도 약화시킨다. 글을 아는 누구라도 지식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쇄술은 엘리트층이 지식을 장악하던 기존 질서를 파괴할 위협으로 여겨졌다.
(332쪽) 정부나 수공업자 모두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문제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장 자체가 축복은 커녕 악이 될 것이다. 매년 그 수가 증가하는 노동자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주인의 끊임없는 감시가 필요하다. 그런 감시가 없다면 이들 대중은 점차 타락해 종국에는 주인에게 큰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자신들도 비참한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432쪽) 법치주의는 역사적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매우 이상한 개념이다. 법이 왜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왕과 귀족만 정치권력을 갖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하다면 왕과 귀족에 허용되는 것이 피지배층에게는 당연히 금지되고 처벌받아 마땅한 일이어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법치주의는 절대주의 체제하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법치주의는 다원주의 정치제도 및 그러한 다원주의를 지지하는 광범위한 연합 세력의 산물이다. 많은 개인과 무리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그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권력을 가질 때만이 비로소 그들 모두가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이치에 맞게 느껴지는 법이다. 18세기 초 영국은 다분히 다원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휘그 엘리트층도 법치주의에 고이 깃들어 있는 개념대로 법과 제도가 자신들 역시 옭아맬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439쪽) 명예혁명은 한 엘리트 집단이 다른 엘리트 집단을 전복시킨 것이 아니라 젠트리와 상인, 수공업자는 물론 휘그파와 토리당 파벌까지 가세한 광범위한 연합세력이 절대왕정에 반기를 들고 일으킨 혁명이었다. 이 혁명의 결과로 태동한 것이 바로 다원주의 정치제도였다.
(439쪽) 법치주의 역시이 과정의 부산물로 등장했다. 여럿이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과 견제를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어느 일방이 과도한 권력을 거머쥐기 시작하고 이내 다원주의의 토대마저 뒤흔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통치자에게도 한계와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는 개념이다. 스튜어트 절대왕정에 반기를 들었던 광범위한 연합세력이 도출해낸 다원주의 논리에서도 이 개념은 빼놓을 수 없다.
(440쪽) 지배층은 자신들도 법의 지배에 따라야 하며 자신들의 정당성은 법제의 형평성과 보편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려 무진 애를 썼다. 또 지배층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의든 타의든 자신들이 뱉은 말에 발이 묶이는 형국이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규칙대로 권력 놀이를 하되 그 규칙을 깰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권력 놀음의 판 자체를 뒤집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440쪽) 법을 지키지 않으면 왕실의 특권이 ... 재차 밀물처럼 자신들의 재산과 생명을 덮쳐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441쪽) 그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선택한 이 매체는 본질적으로 자기 계층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특징이 있었다. 법은 그 형식과 전통에 이미 신분과 귀천을 가리지 않고 만인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형평성과 보편성의 원칙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441쪽) 일단 뿌리를 내리자 법치주의 개념은 절대주의를 억제하는 것은 물론 일종의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면 어떤 개인이나 단체, 심지어 캐도건이나 월폴마저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으며, 사유재산을 침범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한 평민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지닌다는 것이다.
(441쪽) 포용적 제도가 보전되려면 권력 행사를 견제할 수 잇어야 하고 법치주의의 근본이념에 따라 사회의 정치권력이 다원주의적으로 분산되어 있어야 한다.
(442쪽) 포용적 정치제도 덕분에 포용적 경제제도가 마련되면 소득이 더 공평하게 분배되고 힘을 얻는 사회계층이 한층 더 넓어지며 정치 면에서도 더 공평한 경쟁의 장이 펼쳐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치권력을 찬탈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이 낮아지고, 착취적 정치제도를 재창출할 동기 역시 약화시킨다. 바로 이러한 요인들이 영국에서 진정한 민주적 정치제도가 출현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