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저자(글): 프리드리히 니체 / 번역: 장희창
- 출판사: 민음사 / 출판일: 2004.1.2.
근로를 하는 누구라도 회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허무와 무기력감을 느껴봤을 것이다. 내가 속한 회사에 긍지를 느끼며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마음과 태도로 항상 다닐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직장인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허무와 무기력감을 달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퇴근 후 집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오락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며 기력을 회복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더 나은 직장으로의 이직이나 진로 변경을 위해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이 무엇이건 간에 허무를 느끼고 그것을 달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허무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에 허무주의자는 의외로 상당히 많다.
그러나 단순히 허무를 인지하기만 한 상태에서는 ‘수동적 허무주의’에 머무를 뿐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 허무를 극복해야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 정립을 위한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능동적 허무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니체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가 인간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시대가 강요하는 질서와 가치는 소용없다는 의도에서 허무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며 가치 판단을 스스로 하고, 틀린 가치라면 주저 없이 버리고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가치가 최고의 가치가 될 수 있고, 반대로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가치가 최악이 되어버리는 가치 전도는 필연적이며, 이러한 가치 판단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전개하였다. 결국 니체는 인간은 스스로 가치를 판단하여 시대가 강요하는 불필요한 질서와 가치인 ‘허무’를 극복한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허무주의는 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며, 허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따라서 좋은 의도로도 사용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사용되는 허무주의는 사실상 수동적 허무주의와 가깝다.
허무와 무기력감이 심화되면 조직이나 사회 혹은 특정 개인에 대한 비관으로 이어져 염세주의(pessimism)로 발전한다. 근래 온라인에서 특정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집단들이 극단적인 염세주의에 비롯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허무를 원천적으로 해소하지 않는 수동적 허무주의자의 증가는 결코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현상이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합쳐 십 수 년 동안 우리는 성실과 인내, 조직에 대한 헌신과 희생과 같은 가치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교육 받으며 성장하였다. 이런 오랜 기간 동안의 ‘세뇌’ 덕분에 우리는 매일 부지런히 출근하여 성실하고 인내하며 업무를 보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차원에서 쉴 새 없는 야근을 당연시 하게 되었다. 이런 우리의 긍지 높은(?) 희생과 헌신의 결과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가장 길고, 자살률이 가장 높고, 행복지수가 아주 낮은 경이로운(?)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명백한 수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교육은 여전히 근대식이다. 창조와 혁신, 변화라는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교육은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전체주의 국가였던 일본에서 행해진 방식이기 때문에 현재에도 우리는 근대적인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학교를 떠나 사회에 나오면 아무도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배움을 찾고, 판단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러나 스스로 능동적으로 무엇인가 해본 적 없는 근대식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굉장히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해보려니 두렵고, 희생과 헌신이 최고의 가치라고 세뇌를 당했으니 회사에 지장을 줄까 겁이 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상사의 눈치를 살피고 퇴근하여 오늘도 TV나 오락기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심신을 달래며 마냥 ‘내일’만을 준비할 뿐이다. 이렇게 우리는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오늘의 허무를 수동적으로 일관하며 성실한 사회의 일꾼으로 매일 똑같은 일상을 쳇바퀴처럼 돌며 하루를 마감한다. 능동적으로 허무를 대할 때 조직이 장기적으로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내일만을 생각할 뿐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세뇌’를 깨닫고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야 하고,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알아내야 한다. 그러니 더 이상 미디어가 흘리는 편견 가득한 영상이나 오락으로 우리의 의식을 꺼뜨리지 말고, 우리의 내재적 세계를 넓힐 수 있는 활동에 힘쓰자. 그리고 외부 세계와의 충돌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부딪히자. 조금씩 천천히, 우리가 원하는 인생을 계획하고 실행하여 허무를 물리치고 우리의 자유를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