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본능

  • 저자(글): 리처드 랭엄 / 번역: 조현욱
  •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 출판일: 2011.10.14.

tvN 드라마 철인왕후를 보다 요리에 관심이 생겨 요리책을 찾아보다가 이 책을 알게 됐다. 처음엔 요리법을 다룬 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인류의 진화 과정을 요리와 연결해 풀어낸 학문적인 내용이었다. 책이 배송된 후, 예상과 전혀 다른 목차를 보고 잠시 당황했지만,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흥미진진한 전개에 빠져들었다. 이 책은 인류가 불을 이용한 '화식'을 시작하면서 얻게 된 진화적 이점을 주장하고 증명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며, 그 설명들이 하나같이 흥미롭다.

사실 나는 ‘날 것’으로 먹는 선식(생식)에 약간의 로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로망이 산산이 부서졌다. 불로 조리하면 일부 영양소가 파괴되긴 하지만, 오히려 영양분 흡수율이 높아지고 소화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인류 진화에 더 유리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는데, 그중에서도 외과의사 버몬트와 청년 마르탱의 일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윤리적인 문제로 불가능한 실험이지만, 버몬트는 마르탱의 위장을 직접 관찰하면서 익힌 음식이 생식보다 훨씬 빠르게 소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쯤 읽고 나니, 선식을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건강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는 점이 이해됐다. 건강을 위해 선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선식이 꼭 건강에 이롭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무턱대고 선식을 찬양하는 태도는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다.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선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이 책이 ‘고기가 항상 옳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고기 먹을 때 느끼던 죄책감이 사라져 버렸다. 화식의 대표적인 예시로 육식이 자주 언급되다 보니, 이상하게도 ‘고기는 언제나 정답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이미 꽤 많은 고기를 먹어 놓고도 ‘나는 인류 진화에 헌신하고 있는 중이야’라고 정신 승리를 하며 더 먹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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