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의 고독
1960년대를 주름 잡았던 팝 아티스트인 비틀즈를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비틀즈의 앨범을 찾아 듣지는 않아도 ‘Let it be’, ‘Yesterday’라는 곡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으니 비틀즈가 사랑 노래를 전문으로 부르는 점잖은 가수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의외로 비틀즈는 록(rock) 가수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경호’와 같은 장르의 가수인 셈이다. 어쩐지 낯선 느낌이 들지만, 알고 보면 클래식을 제외하고 젊은 층이 즐겨 듣는 대중음악 대부분은 록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록의 표현력은 다양하다.
비틀즈가 활동했던 1960년대는 록음악이 확산되면서 본격적으로 하나의 음악 장르로 자리 잡는 시기였다. 이전까지 록은 대중들에게는 그저 철없는 젊은 사람들이 불러대는 시시한 음악으로 여겼는데, 비틀즈는 이러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틀즈는 활동을 시작한 1960년부터 1970년대에 해체하기까지 많은 앨범을 발매하였다. 총 13개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앨범 자체의 우수성을 비롯하여 대중과 음악, 문화에 미친 영향력을 고려하였을 때 거의 대부분의 앨범이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명반 반열에 이름이 올라 있다. 이 중에 특히 1967년에 발매된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이하 ‘페퍼상사’)‘은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앨범이다.
이 앨범은 록음악을 인정하지 않는 당대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얻게 되면서 록음악의 위상을 높이고 확산을 주도한 위대한 앨범으로 평가된다.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분리가 심화되던 시기에 클래식을 즐겨듣던 사람까지 록음악으로 편입시켰으며, 컨트리 음악이 지배적이던 미국 지방으로의 록음악 확산에도 기여를 하였다. 또한, 비틀즈에게는 다소 냉소적이던 기성세대들이 가진 거부감 역시 해소한 앨범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비틀즈가 이 앨범을 제작할 때는 대중과 멀어져 있었다. 1966년 6월, 일본에서 는 공연 장소가 ‘부조칸’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일왕이 연설하는 장소로, 일본 무도의 성지라는 이미지가 강해 외국 밴드의 공연을 탐탁치 않아하는 일본인들이 많았다. 비틀즈는 몇몇 일본인들에게 일본인과 천황을 모욕한다며 공연 중단 요구와 살인 협박을 받아야 했다.
필리핀 공연에서도 비틀즈는 퍼스트 레이디 이멜다 마르코스로부터 모욕을 받았다. 당시 필리핀은 계엄령 치하 아래 마르코스 내외가 정치를 장악하고 있었다. 비틀즈의 공연 소식을 들은 이멜다 마르코스는 일방적으로 비틀즈에게 초청 공연을 해줄 것을 요구하였지만, 비틀즈는 이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과의 만남을 꺼림칙하게 여겨 그녀의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심한 모욕감을 느낀 이멜다 마르코스는 언론을 통해 비틀즈에게 테러 협박과 폭행을 일삼도록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한편, 비틀즈의 출국을 방해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요구하는 등 미개하고 치사한 보복 행위를 일삼았다.
다행히 비틀즈는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존 레논의 과거 종교 관련 인터뷰 내용이 주목을 받으면서 기독교 중심의 국가들의 대중을 위주로 또 한 번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 인터뷰는 ‘예수보다 비틀즈가 유명하다’는 말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 비틀즈는 지난 4년 동안 1400회나 되는 콘서트를 투어하며 이미 투어 콘서트에 깊은 회의감을 갖고 있던 터였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겹치면서 비틀즈는 투어 콘서트를 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콘서트를 전면 중단하였다. 이렇게 비틀즈는 연이은 이슈와 대중들로부터의 비난과 누적된 피로로 대중과 멀어지며 그 신화가 이대로 끝나는 듯 했다.
이후 비틀즈는 공연 보다는 레코딩 작업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비록 대중과 멀어졌지만 오히려 그런 현상이 비틀즈에게는 음반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되었다. 새로운 음악에 대한 씻을 수 없는 갈증을 채우기 위해 비로소 그들은 그들만의 ‘위대한’ 음악을 탄생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고독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과정에서 비틀즈 리드 보컬이었던 폴 매카트니는 기존의 비틀즈와는 다르게 음반작업을 해보고 싶었고, 페퍼상사라는 가상의 록그룹을 연기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멤버들에게 제안하였다. 그 결과로 페퍼상사 앨범이 탄생하였으며, 그들의 이 시도는 그 동안 어떤 아티스트도 하지 않았던 최초의 시도가 되었다.
투어를 마치고 대중들로부터 받은 상처에 절망하여 활동을 중단 하였다면 어쩌면 대중음악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틀즈는 위태한 그 순간에 오히려 위대해지는 선택을 하며 남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 자멸하며 술과 마약으로 삶을 방탕하게 보내다 파국을 맞는 아티스트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결국 기념비적인 앨범을 발매하며 재능과 열정이 집중되었을 때 어떤 쾌거를 이루어 내는지 스스로 증명하고야 말았다. 우리는 고독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것조차 미디어와 교육의 의도된 세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고독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다. 아직도 우리는 감정 통제는 개인의 영역일 뿐이며,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을 저급하다고 비난한다. 아직도 감정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 여겨 사후 치료에만 집중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감정은 학습과 훈련을 통해 인지하고 통제될 수 있다. 실제로 감정 통제를 위해 명상과 같은 훌륭한 방법들이 많고, 항상 감정과 조우하고 있는 우리는 이러한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 말인 즉,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우리의 미래를 위해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였는지 모르지만, 비틀즈 역시 명상을 배우기 위해 인도를 여행한 적이 있다.
고독은 위대함의 밑바탕이다. 우리 모두는 위대해질 수 있는 그릇을 갖추고 있다. 그 감정이 우리를 엄습할 때, 우리는 오히려 이 감정을 가득 움켜쥐어야 한다. 우리가 성취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고독은 우리를 행동으로 이끌 것이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고독은 상대에게 진심 가득한 친절을 베풀게 할 것이다. 그러니 비관적인 판단으로 고독을 물리치지 않고, 그 감정과 함께 원하는 바를 성취하자.